가학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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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루駕鶴樓, 가학루기駕鶴樓記
폭포 위 언덕에 자리한 누각, 가학루. 가학루에 대한 설명 가학루駕鶴樓 필동암과 용주담 글씨가 새겨진 폭포 옆의 언덕에 세워진 누각입니다. 뚜렷한 기록이 없어서 언제적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47년 중수하면서 남겨진 기록에 '대원군이 쓴 가학루 현판이 있었다'고 보아 대원군 시기부터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현재 남아있는 정자는 네 차례정도 수리했으며, 1930년대의 대들보인 것 같다고 얘기한답니다. 정자를 받치고 있는 돌기둥이 경복궁 중건 당시의 양식과 같다고하니 대원군 시기, 인근 광륜사가 신정왕후 조대비 (1808-1890)의 별장이었던 시기와 연관된 정자로도 보입니다. 광복 후 이 땅을 소유했던 송석 박문규가 1947년 중수하면서 옥소 심형진이 짓고, 낙운 윤희채가 쓴 가학루기 駕鶴樓記와 현판이..
2015.10.08 -
도봉산 바위글씨 ③,④ 필동암必東巖(岩), 용주담舂珠潭 _ 서울 도봉
제일동천 바위글씨가 위치하는 곳은 도봉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절벽의 위쪽입니다. 그 절벽을 통해 위, 아래가 나뉘고 계곡의 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지는데, 이 곳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없지만 꽤나 수려합니다. 특히 수량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폭포의 힘과 무게감에 압도되기도 하죠. 용주담, 필동암 바위글씨는 이 폭포 아래에 위치한 바위글씨입니다. 장마철 동안 물이 불어난 도봉폭포의 모습. 왼쪽 바위에 필동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옛 글자는 오른쪽부터 읽는다. 나무에 조금 가려졌지만, 힘있게 '필동암'이라 새겨져있다. 필동암必東巖(岩) 순자 荀子 유좌 宥坐 편에 공자의 제자 자공과 공자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자가 물을 보고서 느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라 물었을 때 '만 번을 굽이쳐 흘..
201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