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거리감/중동(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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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 ① 역사 _ 이스라엘 예루살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원죄로 인한 영원한 죽음을 해결할 방법으로 구약시대에는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과 동물을 제물로 하는 제사들이 제시되는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스스로 제물이 됨을 믿는 이로 인해 그 죄가 씻어진다는 신앙. 그것이 기독교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핵심과는 별개로 지역 토속신앙(미신)과 결합된 형태로 예수에 관한 수많은 유물들이 성물 중의 성물로, 특히나 최후의 만찬 때 쓰여졌다는 성배, 매달리고 죽었던 십자가,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를 쏟게 했다는 롱기누스의 창,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쓰였던 수의 등이 공인, 비공인 최고위급 성물이 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 편의상, 영문은 그대로 넣겠지만 교회 건물을 지칭할때 '○○교회'라고 쓰겠습니다. ..
2014.06.05 -
하기아 소피아 ① 주변 상황과 역사 _ 터키 이스탄불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15세기 중반 오스만 투르크 왕조의 비잔틴제국 점령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라틴어 콘스탄티노폴리스), 그보다 오래된 이름은 비잔티움입니다. 그리스시대에는 어촌에 불과했던 이 곳은 로마의 확장과 함께 지역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중소도시로 개발됩니다. 하지만 현재의 대도시가 되는데에는 거대로마제국의 동서분할정책과, 로마의 부흥을 꿈꾸던 황제(콘스탄티누스)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겁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거대제국의 쇠락을 막을 동력으로 '새로운 로마 Nova Roma'라는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A.D.330년, 콘스탄티노플의 탄생입니다. 다만 콘스탄티누스 당시에는 '노바 로마'로 불렀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의 재건과 천도가 것이 정치적, 도..
2014.05.14 -
예루살렘의 시초, 모리아산 _ 이스라엘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여러모로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3대 종교 중 두 종교의 성지로 자리하기 때문입니다(기독교와 이슬람교).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국가의 옛 수도이기도 합니다. 우선 이스라엘-유대인의 종교인 유대교의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근본인 예수가 활동했던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제1성지로 생각하고 (지금은 그 지위를 메카가 가져갔지만) 이곳을 향해 경배했었으며, 지금도 이슬람 3대 성지로 추앙하는 곳입니다(현재는 메카-메디나 다음인 제3성지로 이해합니다). 애증의 예루살렘. 시간은 지났지만 그곳은 여러모로 여전하다. 1. 그 분의 시선이 머무는 땅 _ 모리아산무구한 역사 가운데 예루살렘이 유대교와 기독교..
2014.05.02 -
장미의 도시 _ 요르단 페트라
뙤약볕 잘못가다간 병 생기기 십상. 나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이다. 이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것이다. 두산 EnCyber 백과사전 중
2009.11.24 -
死海 : 죽은바다의 비유 _ 요르단 사해
사해 파노라마, 동쪽 구릉(요르단)에서 서쪽(이스라엘방향)을 바라본 모습이다. 사해에서 만난 현지인들, 누가 현지인인가...;;; 이스라엘 민족은 물과 그리 친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물'가운데 하나인 갈릴리를 수식하는 단어는 '바다'입니다. 현대의 관점에서는 결코 바다일 수 없는 호수인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었을 홍해, 지중해, 사해 등 뿐 아니라 성전에 있는 물두멍도 '바다'라고 표현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과 물은 그리 친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리라 볼 수 있습니다(히브리어로 바다는 얌 יַם이라고 불립니다. 물이 많이 모여있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 가운데 사해는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으로 받았던 가나안 땅의 동부에 위치합니다. 현재 레바..
2009.11.17 -
모자이크 교회 : 현대 마다바의 기원 _ 요르단 마다바
1880년 마다바가 재건되면서 발견된 모자이크. 그 위에 세운 교회. 모자이크 교회란 이름이 붙게한 중세의 모자이크지도, 훼손이 심해서 바리케이트를 쳐놓았다. 현재 남아있는 모자이크 지도와, 그것이 보여주는 주변의 모습이다. 성 조지 정교회당 Greek Orthodox Basilica of St. George, (일명) 모자이크 교회는 마다바Madaba의 재건과 함께 지어진 현대 마다바의 역사와 같습니다. 마다바는 오스만 제국 말엽, 지금의 요르단 케락이라는 곳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대립으로 많은 사상자가 나게 되었는데, 핍박을 참다못한 기독교 인들이 당시 요르단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던 오스만 황제(술탄)에게 탄원하여 얻어낸 땅입니다. 최초의 이주민들은 케락에 살고 있던 90가정의 기독교인들과 카톨릭..
200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