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벽丁彦璧 선생 묘소 _ 경기 안산

2009. 12. 8. 01:52익숙함과 거리감/한국韓國

 

 어쩌다가 보니 요즘 묘지 사진만 줄창 올리는 것 같습니다. 본격 묘지 전문 블로그가 될 공산이...;;;
 여튼 지금 소개 할 묘지는 정언벽 선생의 묘소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다음과 같이 인터넷을 긁어볼까합니다. 제가 참고하는 자료들은 나름 국가기관에서 열심히 피땀 흘린 세금을 받아 '교수님'에 준하는 분들이 집필했는데, 인터넷에서 긁는 자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의 캄캄한 앞날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네요.


 조선시대의 문신·자는 계홍(季弘), 본관은 나주(羅州), 관찰사 호선(好善)의 아들이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5대 조부이다. 인조22년(1644) 생원(生員)으로 문과(文科)에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거쳐 박사(博士)를 지내고 예문관봉교겸 세자시강원설서 (藝文館奉敎兼世子侍講院設書)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예조, 병조좌랑(兵曹佐郞), 사헌부지 평(司憲府持平)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홍문관 교리(校理)등을 역임하였다. 헌납 때 왕자 징(徵)의 죄가 논의되자 이를 변호하여 무사케 하였다.


 이런 분이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부분(?)은 정약용 선생님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묘소 아래에 마련된 나주 정씨 묘소에 있는 분들 또한 정약용 선생님의 조상이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 분들 묘소를 찾는 것이 어찌 이리 힘든지...

 

 처음 이 묘소를 찾기 시작한 것은 12월 1일이었습니다. 강징 선생의 묘소를 찾기 전에 여길 찾았는데, 우리네 깊은 땅 덩어리의 특징인지, 아주 유명한 분이 아니면 접근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업무상 찾아갔기 때문에 가는 길에 관한 사진을 촬영하지 않았지만, 안산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시골길 아닌 시골길을 지나서,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음은 얼마나 유적에 대해 부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봄직합니다. 향토유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그만큼의 뜻이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한번 쯤와서 그런 정신을 느껴봐라. 이런 얘기일텐데 말입니다. 무엇을 위한 유적 지정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나 이렇게 세게 이야기하지만, 어딜가나 다 똑같습니다. 큰 도로에나 몇백미터 앞에 어떤 유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유적을 찾기 위해서는 한두시간 헤매기 일쑤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원고 또한, 원고 집필자가 한번이라도 답사를 해봤을까 의심이 드는 부분이 많을 정도 입니다. 차라리 저보고 인터넷에서 자료 긁어달라고 하시죠.

  

혹시나 찾아가실 분을 위해. 
묘갈 : 37°20′50″N 126°51′06″E
묘소 : 37°20′55″N 126°51′01″E

 

 거듭 얘기하지만 어떤 연구를 진행하다가 이 글을 보신 이가 있다면. 제발 한번쯤 발로 묘소를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긁어서 쓰는 정보는 티가 납니다. 그런 한심함에 이 자리에 GPS도, 지도도 남겨놓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부탁하는 것이지만, 비전공자가 전공자의 그간의 학업을 무시하고 비웃는 일이 나지 않도록 발로 쫌... 네?

 

- 정언벽丁彦璧선생 묘는 아래 지도에 표시 된 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