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뱀 조형물 _ 요르단 느보산

2009. 11. 13. 02:11익숙함과 거리감/중동


느보산 모세기념 교회에 세운 놋뱀 조형물. 군데군데 새 둥지가 보인다.

" 뱀을 만들어서 막대 위에 달아라.
누구든 뱀에 물린 사람은 그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_ 민수기 21:8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됩니다. 특히 '믿음'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언급되는 '믿음'은 하나의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믿음으로 잘된다.', '믿음으로 성공한다.' 등의 잘 됨, 성공과는 다른 문제이며, 엄밀히 말한다면 내세, 영적이며 절대적인 성장과의 문제입니다.


느보산은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약속된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마지막 코스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남아있던 출애굽 1세대의 마지막 3인 가운데 하나이자, 이스라엘을 이끌고 하나님의 일을 행했던 모세가 죽습니다.
모세가 행했던 드라마틱하고 놀라운 일들이 많습니다(물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집트 파라오 앞에서 행했던 열가지 기적(재앙), 홍해의 기적, 십계명을 받은 일,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꾼 일 등이 대표적인 일들입니다. 그 외에 성막을 건설하고 이스라엘을 정비하는 일 등을 행했습니다.

사실 성경의 사건들은 문자적으로 맞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적인 해석도 가능합니다(창세 이야기, 사람의 창조, 노아의 홍수 등은 과학적 믿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만... 과학도 통계에 근거한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 특히 사건들은 대체로 반복, 재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느보산에 세워져있는 놋뱀은 민수기 21장에 있는 사건과 관계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는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모세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회복명령과 관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진영으로 불뱀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 불뱀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며 고통스러워하면서,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할 방안으로 위에 언급된 민수기 21:8 말씀에서처럼 모세에게 '놋으로 뱀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명령하라고 합니다. '장대 위에 걸린 뱀을 보면 살 것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성경 자체를 픽션으로 보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단순히 '보는 것'으로 고통이, 아픔이 사라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쉬운' 방법입니다. 너무나 쉽고, 편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기독교의 탄생과 관계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관계있습니다. '대속 代贖 Redemption of Christ'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신앙적 전통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시대 때 정비되었던 법규는 대체로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행할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웃과의 관계(사회문제)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공정해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늘 주인과 하인의 관계로 묘사됩니다. 단, 이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불공정함, 불합리함이 아닙니다. 하인을 아들처럼, 상속자처럼 여기는 가장 선한 주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접두어 가운데 하나가 '선하신'입니다. 그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적절하게 살명할 수 있는 단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겁니다. 영적인 존재면서 육신에 갇혀있는 사람에겐 하나님이든 사단이든 전능해보이고 능력있어 보일텐데 이 둘의 차이 또한 명백합니다. (인간 입장에서 구분이 잘 안되는) 능력 뿐 아니라 당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선하신 분이란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다면 구속언약과 그것을 지킨 선하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공의로우심이 그분의 보좌 속성이기에 심판은 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음을 입을 수 있다는 놋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시한 것입니다. 이 쉬운 복음이 값싸게 쓰이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너무나 쉬운 것이기에 사람의 신실함이 드러나는 것은 말그대로 하나님의 어리석음으로 사람의 지혜로움을 폐하는 것과(고전 1:25) 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