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시초, 모리아산 _ 이스라엘 예루살렘

2014. 5. 2. 03:10익숙함과 거리감/중동

예루살렘은 여러모로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3대 종교 중 두 종교의 성지로 자리하기 때문입니다(기독교와 이슬람교).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국가의 옛 수도이기도 합니다.
우선 이스라엘-유대인의 종교인 유대교의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근본인 예수가 활동했던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제1성지로 생각하고 (지금은 그 지위를 메카가 가져갔지만) 이곳을 향해 경배했었으며, 지금도 이슬람 3대 성지로 추앙하는 곳입니다(현재는 메카-메디나 다음인 제3성지로 이해합니다).


애증의 예루살렘. 시간은 지났지만 그곳은 여러모로 여전하다.
 
 

1. 그 분의 시선이 머무는 땅 _ 모리아산

무구한 역사 가운데 예루살렘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적 성지로 추앙받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이 두 종교의 공통 경전인 구약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_ 창세기 22:1-18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알 법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이야기입니다. 번제는 외형적으로 불에 태우는 제사이며, 신학적으로 속죄를 의미합니다(더 많은 의미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속함받기 위해 자신의 몸을 태워버리면 인생은 그대로 끝이다보니(?) 제물이 등장하게 되며, 제물은 '그 사람의 죄가 전가된' 동물이 됩니다(번제의 법례는 레위기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에는 일반적으로 동물이 되었던 제물 대신에 사람을, 그것도 제사 지낼 아브라함의 아들을 제물로 요구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의 이런 무리한(?) 요구에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순종하고, 제사지로 지목된 모리아 산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2:1-5)  이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으나 기독교적 해석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 첫번째이며, 당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알려진 아브라함의 순종이 이후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어린양 - 예수 - 을 예표했다고 말합니다. 22장 후반부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볼 때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으로 번제했다고 나오는데, 이 숫양이 예수를 상징한다고 하죠.


구약성경에는 이 모리아산 Mt. Moriah이 두번 더 언급됩니다. 한번은 이스라엘이 지금도 꿈꾸는 최고의 왕 다윗의 시대입니다. 다윗 치세 말년에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에 역병이 도는데 이 역병을 멈추기 위해 다윗이 제단을 세운 곳이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사무엘하 24:18-25, 역대상 21:15-22:1)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이 땅을 살 것을, 그리고 여기에 제단을 세울 것을 요구하십니다. 땅의 주인이었던 아라우나(오르난)는 땅을 다윗에게 그냥 양도하려 하지만 다윗은 값을 치르고 땅을 샀으며, 그 땅에 하나님의 집이 세워질 것을 이야기합니다(역대상 22:1). 그리고 결국 그 땅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을 세웁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_ 역대하 3:1


현재 바위 돔 Dome of the Rock 안에 있는 '바위'의 모습 - 출처 : 위키피디아


구약성경에 의하면 솔로몬 대에 세워진 첫번째 성전 - 곧 제1성전(솔로몬성전) - 은(B.C. 10세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숫양을 잡았던 곳, 다윗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역병을 그친 곳인 셈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바로 이 '성전'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성전이 유대인의 정신 한 가운데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때부터 모리아산은 성전산 Mt. Temple이라 불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근간이 되는 아브라함-요셉-출애굽-가나안정복기-사사시대-왕정시대 동안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최전성기였던 다윗-솔로몬을 지나 약 400년간 북이스라엘-남유다의 남북조시대로 돌입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B.C. 724년 북조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앗수르)에게, B.C. 586년 남조 유다가 신바벨로니아(바벨론)에 패망하면서 성전 또한 같이 무너졌습니다. 신바벨로니아의 네부카르네자드 2세(Nebuchadnezzar Ⅱ - 느부갓네살)가 남유다를 공격해서 남유다의 멸망으로 열왕기하, 역대하의 내용이 마무리 되고 있죠.
70년에 걸친 포로기를 거쳐 귀향을 허락받은 유대인들은 귀향 1세대가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B.C.516년, 같은 자리에 제2성전(스룹바벨성전)으로 불리는 성전을 건축합니다. 제1성전의 영광을 알았던 귀향 1세대의 노인들은 제2성전을 보고 그 비참함에 울었다고도 하는데... 성전의 건축과 유대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책이 '느헤미야'와 '에스라'서입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고지식하고 율법에 쩔은 유대인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자신들의 패망을 하나님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라 여겼던 유대인들이 율법과 계율에 철저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참된 회복을 이룰 메시아(구원자)를 기다립니다.

 
현재 기독교계에 알려진 골고다언덕과 예수의 무덤은 '성묘교회'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 성묘교회의 위치를 지정한 사람은 동-서로마가 분열되기 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입니다(헬레나는 성묘교회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여러 성지를 많이 지정해놓았습니다). 성묘교회가 있기에 그 곳이 예수가 십자가형 당한 골고다언덕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모리아산의 특별함(아브라함 사건이라든지, 오르난의 타작마당 등)이라면 아마도 골고다언덕과 모리아산은 같은 곳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전설과 전승을 따라 사건의 위치들이 다르게 이야기되며, 증거 또한 없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습니다.


2. 로마 시대의 예루살렘

제2성전은 카이사르(Caesar - 영어식으로 시저라고 발음되는)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던 무렵인 B.C.1세기에 이 지역의 분봉왕 헤롯에 의해 새단장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롯과 정치적으로 로마와 결탁한 이스라엘 종교-정치지도자들 덕택에 약 100여년간 평화를 누립니다. 하지만 다신교 국가인 로마의 문화를 강요하면서 이스라엘 내부에서 반로마-독립정서가 고조되었고 결국 A.D.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성전이 약탈, 파괴되었으며, A.D.73년 마사다에서 항전하던 유대인들이 몰살되면서 세계각처로 유대인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로마 티투스 개선문에 새겨진 성전약탈부조 - 출처 : 구글링 / G. J. Goldberg


로마에 의해 유대인들이 소개되면서, 비어버린 땅은 그 외의 소수민족 - 블레셋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에게 넘어갑니다. 물론 일부 유대인들이 살아남았지만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로마와 후속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이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등장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합니다.


3. 이슬람의 예루살렘과 모리아산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초기 이슬람교는 이슬람이 차용한 종교세력 - 유대교와 기독교 - 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경배의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지정합니다. 초창기 이슬람에게 예루살렘은 제1성지의 지위에 있었죠. 하지만 기존 유대교단과의 입장차, '성천'과 꾸라이쉬 부족과의 전쟁 승리를 통해 아라비아 세계의 패권을 잡은 이후부터 완전히 새로운 종교로서 이슬람교 공동체 - 움마 - 를 형성하고, 경배의 방향도 메카로 바꾸게 됩니다(A.D.624년). 하지만 갑작스럽게 경배의 방향을 바꾸거나, 그 중요성을 경감시킬 수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무함마드의 승천' - 미라지 Miraj- 은 A.D.621년의 일이라고 합니다. 미라지의 내용이 담긴 꾸란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lted is He who took His Servant by night from al-Masjid al-Haram to al-Masjid al-Aqsa, whose surroundings We have blessed, to show him of Our signs. Indeed, He is the Hearing, the Seeing."
"하나님의 종을 밤중에 하람사원에서 아크사 사원으로 밤하늘 여행을 시킨 그분께 영광이 있으소서. 그곳은 하나님이 축복을 내린 이웃으로 하나님의 일부 표적들을 보여주고자 함이라. 실로 하나님은 들으시며 지켜보고 계시니라." _ 꾸란 17장(이스라) 1절


미라지 Isra and Mi'raj, 1540년 경, 니자미의 함사


아랍어 원문의미대로 해석하면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고 합니다.
"알라는 그의 종을 데리고 밤에 성스러운 예배당으로부터 우리들이 정결하게 한 멀리 떨어진 예배당에까지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조짐을 눈으로 경배하도록 하여 주셨도다"

영어 꾸란에 씌여있는 al-Haram은 메카의 하람사원(금지된, 성스러운)을, al-Aqsa는 멀리 떨어진 곳을 의미하며, 구체적인 장소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지만 예루살렘의 성전산을 의미합니다. 전승이 덧붙여지면서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예루살렘까지 밤하늘을 날아가 7단계의 천국을 보고 왔다고 말합니다.'멀리 떨어진 마스지드 al-Masjid al-Aqsa'는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638년 이후 사원으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위 돔 옆에 위치한 알 아크사(혹은 알 악사) 사원입니다. 모두 우마위야 왕조 시기에 세워졌으며 바위 돔은 A.D. 691년에, 알 아크사 사원은 A.D. 705년에 세워집니다. 바위 돔이 감싸고 있는 '바위'는 유대교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바위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도약해서 하늘로 올라간 바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성전산에 남아있는 바위 돔(오른쪽)과 알 아크사 사원(왼쪽)


이후 십자군전쟁 당시를 제외하고 예루살렘은 계속 이슬람 세계의 지배하에 놓여 지금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약 1400년의 세월 동안 알 아크사 사원의 경우는 지진으로 인해 무너지거나 파괴되어서 개보수를 거듭했지만, 바위 돔은 큰 손상없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로 남아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영국의 승인하에 예루살렘을 포함한 고토를 회복하면서 항상 분쟁의 시발점이 되어왔지만, 현재까지 약 70년간 모리아산-성전산 만큼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산 주변은 언제나 시끄럽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죽거나 고통스러워합니다. 언제쯤 전쟁과 고통이 그치고 서로가 서로를 웃으며 대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