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묘갈墓碣

2009. 12. 8. 01:31익숙함과 거리감/생각과 개념

 

 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 또는 한문학 문체의 이름. 묘갈'과 '묘비'(墓碑)는 비석으로 불리기도 했다.
구조는 대개 맨 아래에 반석(盤石), 그위에 비신(碑身), 맨 위에 지붕 모양의 가첨석(加檐石 : 蓋石)으로 되어 있는데, 가첨석이 없는 경우도 있다. 죽은 이의 이름, 가족관계, 출생과 사망 연월일, 자손관계 기록, 살아 있을 때 했던 일 등을 기록했다. 당나라 때는 관직이 5품 이상이어야 귀부이수(龜趺螭首)를, 5품 이하는 방부원수(方趺圓首)를 세웠다. 〈후한서 後漢書〉 주(注)에는 네모진 것을 비, 둥근 것을 갈로 구분했고, 〈문체명변 文體明辯〉에는 반니(潘尼)가 반황문(潘黃門)의 묘갈문을 지어 묘갈문을 만드는 것은 진(晉)나라에서 비롯되었으며, 관직의 등급에 따라 갈과 비를 구분했으나 실제로는 다를 것이 없었다고 했다. 서법(書法)은 명(名)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갈과 비는 같았다. 묘갈은 죽은 이의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대체로 죽은 이의 긍정적인 좋은 점만 쓰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내용의 자료적 가치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묘갈에 써 있는 명문(銘文)을 묘갈명이라고 하는데, 운문(韻文)으로 되어 있고 대개 4언이 중심이나 5언·7언의 장단구(長短句)도 있다. 한국에는 고려시대 최충(崔沖)의 〈홍경사갈 弘慶寺碣〉이 처음이며, 조선 중기에 와서 크게 성행했다. 대표적인 인물인 송시열(宋時烈)은 많은 묘갈명을 남겨 후대 금석문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출처 :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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