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모자

2018. 1. 24. 16:21익숙함과 거리감/생각과 개념


혈연, 혈통. 한국처럼 족보를 중요시하고 정통성의 근거를 핏줄에서 찾는 문화에서 살았으며 역사를 재미있게 여기는 입장에서, 혈연과 혈통에 관한 관심 혹은 생각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낯선 곳에 가서 나에게 익숙한 것들과 비교를 하는 많은 경우를 보며, 그리고 그런 지역에 대해 나중 공부를 하며 느끼는 점에 관한 단편입니다. 

  

1. 민족의 용광로 

캅카스(카프카즈·코카서스) 지역, 네팔의 히말라야 산간 지역, 중국 위구르(신장), 윈난(운남) 지역, 동유럽의 발칸 반도, 크림반도 지역 등을 민족의 용광로라고 부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지역들이 있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지역은 이 정도… 

직접 밟고 눈으로 본 지역은 네팔과 위구르 정도로 짧은 식견이지만, 지역을 다녀온 후에 지역에 대한 객관적인(?) 글들을 읽어보면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허상이면서도 실체로 다가오는 면이 크다는 것에 묘한 혼란을 느낍니다. 

'민족'은 혈통의 연속성으로 개인을 사회라는 단위로 묶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혈통의 연속성 하나만으로는 민족이 구성될 수 없습니다. 최초의 부부에게서 형제자매가 태어나고, 이들의 세대가 계속되면서 이들이 씨족이 되며, 씨족이 덩어리로 묶여 부족이 된다는 식으로 설명되는 혈통론(?)은 한계가 많습니다. (좀 나가자면 근친혼? 물론 존재하는 형태고 혈통적인 면에서 중시되는 면이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진화론이 되었든 창조론이 되었든 누군가는 '최초'였을겁니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에 이 글은 그리 적절치 않습니다. 다만 이 애매한 한계를 두루뭉술 설명하는 역사교과서들에 경의를 보냅니다. 

어찌되었든, 어떤 집단이 자신들을 공동체로 묶는 가장 작은 단위가 '가족'이고, 이것이 조금 더 발전해 '씨족'이 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보이는 씨족집단문화 - 가문이라고 표현되죠 - 나 한국의 중소기업,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보이는 씨족집단경영 등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그만큼 혈통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뜻을 펴고,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첫번째 고려요소가 되는 것이겠죠. (가족에게 뒤통수 맞는 경우도 매우 많다는 것이 함정) 


ⓒ pixabay by candoyi


 

2. 용광로에서 살아남기 

위구르에서 가장 독특했던 것은 민족 특유의 모자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잠깐 여행을 간 여행자의 눈으로는 어떤 모자가 어느 민족을 상징하는지 알지 못하고, 모양과 무늬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만, '민족'으로 분류되는 집단 끼리의 모자가 다르고, 그 다름으로 또한 민족을 분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궁금해진 것이,
그리 편하지 않을 모자. 왜 쓰고 있는 것인가. 

제가 알기로 현재 위구르라고 하는 지역에 살고있는 토착 민족의 대부분은 투르크계 민족들입니다. (위구르, 우즈벡, 키르기스 등등. 심지어 언어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한국의 사투리 차이보다는 크지만, 언어 동질성이 높다고...) 그런데도 모자의 모양은 다릅니다. 혈통자체가 다르다고 여겨지는 타직 등의 민족도 모자가 다르고요. 혈통이 같아도 모자가 다르고, 혈통이 달라도 모자가 다릅니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 2015년 위구르에서


당연한 합리적 의심은 모자는 '씨족' 혹은 '부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라는 점이죠. 아랍권에 가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은 대체로 터번을 씁니다. 보통의 터번은 흰색인데 가끔 검은 터번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들은 얘기로는 이 검은 터번은 '무함마드의 혈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표식으로 의복이, 모자가 이용되는 것이죠. 

사실 신장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입니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간도 마찬가지고, 가보진 않았지만 카프카즈 지역도, 발칸 지역도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산악지대라는 점입니다. 이는 물 부족으로 대표되는 '척박함'의 상징이죠. 강은 물의 흐름상 고지대보다 저지대에서 그 세력을 크게 형성하는데, 산악지역은 물이 적은 지역이라 숲보다 초원이, 초원보다 사막(?)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조건은 초기 정착이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힘의 논리에서 밀려난 집단이 밀려왔을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민족의 용광로라 불리는 지역은 '성장하기 힘든' 지역을 배경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위구르의 경우는 이런 고려대상에 민족의 '유목적 성향'과 '실크로드'라 불리는 지정학적 특징을 같이 갖고 있습니다.  


  

3. 생존을 위한 구분

그냥 밀려왔다면 그것으로 끝이겠지만, 그곳이 교류의 중심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애초에 교류가 일어날 만한 길의 중간 정착지라면 밀려온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타인이 오고 가는 흐름 속에서 정착민의 정체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정체성의 기준이 가족 - 씨족이 될 가능성이 높겠다고 생각합니다. 타인 - 타 문화가 지속적으로 오가는 환경에서 자신들의 힘과 지위를 유지하도록, 내부적인 연대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피부색이나 생김도 차이가 나겠지만, 의복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의복의 일부에서 모자가 나왔을지, 처음부터 모자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자는 멀리서도 상대방을 확인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와 너희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을 것입니다. 피아를 구분하고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수단으로서 모자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4. 모자와 한국 

이런 타지의 환경을 돌아보며, 한국은 어떤가 생각해봅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단일민족'신화를 자랑하는 민족국가로 여겨지지만, 학술적으로보면 꽤 많은 민족들이 경쟁하고 연합했던 지역이라고 이야기됩니다.  - 물론 요즘들어 단일민족보다는 이주민과의 화합을 강조하는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죠. 이에 맞물려 세대가 바뀜에 따라 통일에 대한 견해차도 크게 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은 아니지만 어쩌면 농사짓고 살기에 적합한 마지막 지리적 위치는 한반도를 고대의 민족의 용광로로 자리잡게 했을 것입니다. 부족이 자리잡고, 부족들이 연합해 국가를 형성했던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전, 후 내용입니다. 서술상으로는 이들이 처음부터 동일한 민족이 비슷한 문화 속에서 다른 정치체제로 살아왔다고 말합니다만 실상은 꽤 많은 차이를 보였을 것이라 여겨지죠. 그런 사람들이 약 2000년 동안 천천히 녹아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산 것이 한반도 -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입니다. 

의무교육기간 동안 우리는 고대의 부족국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에서 의복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일반성과 차별성을 두고 있는지 교육합니다. '교육'이고 '설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 건조하게 나열된 공통점과 차이점 위주의 지식만 받아들이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표로 하는 여러 '역사왜곡'이 왜곡이면서 왜곡이 아닌 것은,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불가기조는 이런 애매한 부분에서 쟁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나름 좁은 땅덩어리에 더 작은 읍락과 부족공동체가 살았고, 그들이 그들의 공통성과 정체성을 갖춘 의복과 주거를 갖고 살았으나 보다 큰 정치체계로 통합된, 오랜 시간동안 응축, 밀집, 혼합된 것이 오늘날의 한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측하기 어려운 오랜 시간 천천히 바뀌었고, 씨족-부족 간의 거부감이 들만할때쯤은 전쟁 등의 격변이나, 나름대로 큰 국가들의 안정적인 체제유지를 통해 공동체의식이 내재된 것이 오늘의 한민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자는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발해가 멸망하지 않았더라면,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고 말합니다. 쉽게 재단할 수 없지만, 그 쯤되면 오늘날의 한국, 한민족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덩어리가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한국에서도, 씨족-부족의 정체성에 따른 모자가 다른 인민들이 살고 있고, 오늘날의 부정적인 '지역감정'과는 다른 차원의 지역감정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 pixabay by rawpixel 민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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