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나...

2009. 8. 17. 03:23in Jesus/신앙고백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깨어있음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단순하게 눈을 열고, 어떤 시각을 갖고의 문제가 아니라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의 집합이 깨어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세상은 깨어있음이 없는 시대. 생각에 대해서 양보가 없는 고집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정치에 관련한. 사회에 관련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분명히 호불호가 있는 사항이 있고 의견이 있다. 그것을 강요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글을 통해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호불호와 관계없이, 시대가 이야기하는, 그려내고 있는 것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이야기하며 무엇을 위해 다투고 있는 것일까. 요즘 뉴스를 통해 접해지는 사건과 그 이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다. 단순히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단순한, 그래서 비극적인 아귀다툼이 지금 이 세상에 펼쳐지고 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점점 고통스럽다.

이러한 세상의 움직임에 대해 교회는 너무나 단순하게 정리해버린다. '성령'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 단순한 논리는 힘이 있다. 단순함이 주는 여운은 다 좋은데 단순하게 정리하고자한 화자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건과 이야기의 본질 자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청자를 낳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청자가 많이 양성된 사회, 혹은 공동체는 더이상의 건강한 담론, 건강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지부진한 상태,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퇴보하고 만다.

하나님 오시옵소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민을 씻으시옵소서. 좋은 기도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다. 하지만 이 기도를 내뱉기 전까지 내 마음의 상태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더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중언부언한 기도가 아니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반복되는 회개에 대한 이야기, 영성에 대한 이야기에 진실로 회개를 통해서 충만한 영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 했었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같은 말을 하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보암직하게 말하는 방법, 보암직하지 않게 말하는 방법. 같은 말을 하는데에는 내용을 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습관적으로 생각없이, 깊은 고민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계인가. 혹은 기도 노가다, 어구반복 노가다를 통해 임하시는 분이신가. 아무개는 백번 울부짖었으니 기도를 들어주시나. 누구의 성량은 몇dB을 넘었으니 기도를 들어주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회개를 하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시나. 그런 기계적인 분이 내 하나님인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그저 주문처럼 읊어지는 기도소리 가운데. 나의 영혼은 깨어있는가. 세상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느끼셨던 아픔을 가지고 '정말' 기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단순히 기도만으로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내 할일의 끝인가. 고민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밤이다. 고민들은 내려놓아야겠지만, 이런 고민을 나는 '좁은 길'이라고 부르고 싶다.



'in Jesus > 신앙고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기록할 수 있을까  (0) 2010.09.05
마지막 때  (0) 2010.06.06
요한복음 18장 28절 - 19장 16절  (0) 2010.02.09
믿음 : 반응  (0) 2008.12.23
예배의 중요성  (1) 2007.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