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위한 변명

2010. 12. 14. 02:06보고듣고읽고-/미디어s

 우리 03학번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대중문화비평 소모임 맘스(M.A.M.S.)에서 쓴 글입니다. 당시의 표현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소모임 토의 주제 중 하나가 '흥행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 시나리오에 대한 고찰'(? 정확한 기억은;;;) 정도였는데, 대다수가 시나리오에 혐의를 두고 있어서 시나리오를 위한 변명을 적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점은 2003년 여름입니다. 잘난듯 썼지만 역시 어릴 때 쓰긴 했네요;;;

  
 최근에 영화도, 드라마도... 문화생활이라고는 전혀 향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감상이라고 불릴 만한 무언가를 하기에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지만...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문제들에 대해 점점 답이 보이고 있기에, 생각나는 것을 정리 해 볼까 한다.
 
 
 개념과 단어의 연관성 - 적절한 표현의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 시나리오의 문제를 상당히 아쉬워 한다. 아래 원더풀데이즈, 청풍명월 모두 이 시나리오의 문제로 아쉬워 했다(당시 제 글 이전에 원더풀데이즈와 청풍명월의 흥행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시나리오에 혐의를 두고 싶지 않다.

 이유? 일단은 시나리오를 의심하는 것은 기획사의 장삿속을 의심하는 일이다. 물론 기업이 노골적으로 이익 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산업으로서의 대중문화가 성립되기 위한 제 1의 조건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손익을 책정하는 잣대의  제 1 조건은 '시나리오'가 된다. 시나리오를 읽어보고나서야 기획사 측에서는 감독 인선과 배우 캐스팅을 시작할텐데, 그런 '거대한' 일을 허술한 시나리오로 시도하겠는가?

 그리고 거기에 부차적으로 감독과, 배우들의 지능지수도 의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일을 '의리'차원에서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베테랑'급이라면,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그것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지, 영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판단 못한다는 말인가...? 수많은 스텝들과 함께하며 인간성, 연기력, 빽 셋 중 하나만이라도 없으면 고전하게 되는 것이 이 쪽 세계라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셋은 모두 '지능'과 관계가 있다. 다시말해 적어도 3년 이상 된 배우(3년의 기준도 애매하지만...)는 지능이 부족한 배우가 아니다. 흥행에 실패했든 성공했든 말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는 (비슷한 말이거나, 표현이기도 하지만) '편집의 문제'라고 본다. 예로부터 우리 말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깡총깡총'과 '껑충껑충'은 의미는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느낌을 가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뉘앙스, 편집은 바로 느낌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느낌이 흘러가는 그 포인트를 매끄럽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시나리오가 좋으면 편집하기가 한결 매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형편없다던지, 깊숙한 맛이 없이 가볍다 할지라도, 편집이 좋으면 그 효과는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는 비평가들의 비평과, 실제 관객들의 스크린 스코어가 다른 것으로 설명 할 수 있을 듯한데, 비평이 상당히 좋아도, 스크린 스코어가 안좋은 영화들이 있다. '와이키키브라더스라'든지, '질투는 나의 힘'이라든지, '취화선'이라든지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거꾸로 비평 분야에서 혹평을 받고 심지어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영화라 하더라도, 스크린 스코어가 높게 나오는 영화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조폭 시리즈, 조폭 코미디 물을 들수 있겠다. 한결 같이, 웃긴 시나리오를 가지고, 아무 내용도 없이 웃기는데 충실하다. 이는 시나리오의 승리도 있겠지만, 30%정도는 스타시스템에 의한 결과, 50%정도는 편집의 승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웃음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최선의 편집을 하는 조폭 코미디 물은 이성(어디까지가 이성이라고 불려야 할지는 미지수지만...)의 한도내에서 윤리성을 시험 받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돈 벌기 위한 공식에 아주 충실하다.
 
 또 다른 이유라고 하자면 깊이 보았을 때, 직접 참여했을때는 이해가능한 수준일지 몰라도 결과물을 두시간, 세시간 반짝 보는 관객들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할 수도 있겠다. 분명 시나리오나, 제작 과정에서는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은 스텝들 사이에 이해가 되어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 했다고 모든 관객들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스텝들에게 매력적이라고 모두에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건담'시리즈의 '건담'적인 설정, '매트릭스' 시리즈의 동서양의 종교관과 자연관등의 설정과 배경은 스텝들 조차 이해하기 힘든 매니아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그것이 관객,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끌어들일 수 있던 것은 그만큼의 주제의식, 그것을 드러내는 편집력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흥행에 실패한 우리나라  3대 블록 버스터 - 아유레디?. 예스터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시나리오 상으로는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 였을 지도 모르지만(!) 그걸 만들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단지 '스텝'들만의 영화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 결국에는 얼마나 탄탄한 세계관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잘 풀어냈는지가 흥행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시나리오는 '글'이다. 문자가 가진 단선성을 가지고 문자와 문자 사이에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관객들에게 어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지, 사람들은 가시적이고, 확실한 것이 주어지기를 원하는 속성이 있다. 때문에 시리즈 상 과도적인 입장에 놓여있었던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과 '매트릭스 : 리로디드'에 대한 관객들의 실망어린 평가는 당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의 단선적이고 어떻게든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를 최대한 좁히는 '편집'이 필요하다. 시나리오는 범죄자가 아니다.
 
 
 2003. 7. 18. (지금은 없어진) 맘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