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찍고 정리하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사업

2011. 1. 6. 00:36in Teamplay/경험과 경력사이

목적한 바는 이게 아닌데 뭔가 성토하는 글이 되었군요... 개인적인 이야기와 개인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공존합니다.



 최근 구글어스를 보니 360˚ 파노라마를 제공합니다. 특히 Damascus Azam Palace라는 곳에서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에는 아마도 촬영자로 추정(Willy Kaemena)되는 사람이 파노라마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면서 이 글을 남기게 되네요.



 세번의 해외 여행(?)을 다녀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이 '자료'입니다. 2008년에 다녀온 레반트에 관한 자료도 지속적으로 누적하고 보강하려는데에는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게하려, 더 나아가 그곳의 사람들이 어떤 배경으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성향을 아는데는 심리학에 기초해 '유년기'를 비롯한 성장기가 중요하듯이, 사회나 문화의 경우는 '역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장소의 가치, 그 곳에 배어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중요한 까닭은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요.
   어쨌든 저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2003년에 아는 분으로 부터 오래된 수동 사진기를 받아서 취미삼아 들고다녔지만 사용법도 몰라서 날린 사진이 숱하게 많습니다. 1년이 지나 목련을 찍고 현상한 후에 사진의 매력에 빠졌지만, 그게 다입니다. 그냥 오~래 찍었을뿐, 여전히 모르는게 많습니다.
  
  

1. 향토문화전자대전 사업에 참여하다. 

 그런 제게 사연이 있는 사진 - 모델을 두고가 아니라 - 을 찍고 싶다는 소망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것은 2008년 가을에 있었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사업 - 부천 촬영에 우연찮게 참여하면서부터입니다. 전업 사진가가 목표인 학과 선배가 의뢰받은 일이었는데 급하다면서 7명을 불러서 3일간 부천을 촬영하게 했습니다. 내용은 목록이 있고, 지도가 있어서 어느 지점 어디에 있는 건물, 묘지, 환경을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일 알바 비용이 10만원(건당 5천원 x 20건)이었죠. 다들 로또 맞았다면서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학교에 모여서 했던 말은 이건 생고생이라고... 걷는데 익숙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죠. 걷기도 많이 걷지만 오해사기도 딱 좋은 일이긴 했습니다. 건물에 들어가고, 사무실도 촬영해야 하는가 하면, 갑자기 산에 들어가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한자를 읽어가면서 묘지를 찾아 헤매는 것은 딱 '미친놈' 소리가 날만도 합니다. 

 하지만 걷는 것 좋아하고 어느정도의 역마살 비스무리도 있는 제게는 최적의 일이었습니다. 사흘 간의 알바가 끝나고 2008년 겨울 다시 연락이 왔을때는 저 혼자 촬영을 나가게 되었네요. 향토문화전자대전 - 부천 쪽 사진의 30% 쯤은 제가 촬영한 사진인듯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2월에 연락이 옵니다. 함께 일할 생각은 없느냐. 당시 휴학을 하면서 반년만 놀자는 계획을 바꿔서 입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게 제 첫 직장 생활이 됩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컨텐츠 제작 공시를 띄웁니다. 업체에서 입찰해서 일을 따내는 방식인거죠. 저는 말단 사원이어서 잘 모르지만 대체로 서너개 업체가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이런 '하청'회사에 들어간 격입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2. 향토문화전자대전, 컨텐츠 제작에 투입

 그리고 한 한 달쯤 뒤부터 본격적으로 맡은 일이 향토문화전자대전 - 안산 촬영입니다. 지금 올라와있는 사진의 70% 정도는 제가 촬영한 사진인듯합니다(세보진 않았으니까요;;;) 5월 말부터 11월까지... 퇴사 후에도 촬영했던 것을 포함해서는 만 7개월 정도를 안산을 이잡듯이 다녔습니다. 부천 때와는 달리 지도를 직접 작성하고, 1차 조사된 문서를 검토해서 위치를 직접 찍어야 했으니까요.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에서는 이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인근 대학교나 문화원 측에 1차 자료를 용역하는 모양입니다. 그 자료를 토대로 2차 자료 - 디지털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회사의 일이구요.
 
 어쨌든... 부천에 비해 안산이 너무 넓어서 고생을 조금 '많이' 했습니다. 부천의 경우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존재하는 '항목' 때문에 하루에 찍은 사진이 많아 정리가 힘들었다면, 안산은 이곳저곳 항목이 너무 넓게 산발되어 있어 걸어다니기가 힘들더라구요. 안산 공단(시화)만 자전거 타고 2주일 넘게 촬영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현장 조사 및 촬영 담당자로서 '저'를 믿어주지 않는 회사였습니다. 회사는 성남, 작업장(?)은 안산, 집은 마포에 있어서 출퇴근 자체가 불가능했더라죠. 배려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회사를 가고, 나머지는 촬영을 합니다. 가끔 정해진 날이 아니어도 회사에서 소환하면 가긴 갔습니다. 부천 때의 경험 때문에 하루 = 20건의 목표가 확실했던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안산이 너무 넓다는 것이었죠. 때문에 사업 초반 두달 간 촬영자체가 난항을 겪었습니다. 부천 때와는 달리 주소를 찾고 촬영순서를 정하는 일도 제게 넘어왔거든요(부천 때는 마감에 임박해서 알바를 썼던 것이었다죠).

 회사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에 예상 진행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매주 진행상황을 보고하는데, 예상했던 진행 정도와는 너무 차이나는 숫자의 결과물 때문에 난감해했다죠. (부천의 경우를 통해 예상했던) 매주 100여건의 촬영 목표와는 달리 실제로는 많아봐야 40건 촬영하면 한주가 가는 상황은 어쩌라구요... 더 난감한 것은 약 한달쯤 걸리는 '위치(주소)파악 - 지도작성 - 동선확보'를 위한 여유 시간도 없었다는 겁니다. 사무실 근무자가 해야할 일(주소 찾아주는...)과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는 과정에서 저는 완전히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산을 오가는데만 네다섯시간이 소요됩니다. 더구나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낮으로 제한됩니다. 매일 밤에는 사진을 정리하고 지도를 작성하는 일을 합니다. 일찍 끝낼 수 없으니 일찍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죠. -_-;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새벽 서너시쯤 일을 다하고 잠들고, 아침 아홉시에 나가도 도착하면 열한시...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여섯시쯤 들어가면 집에는 여덟시 혹은 아홉시쯤 도착하는 일상입니다. 다음날 촬영 준비(위치선정 및 동선 확인)하는데만도 두세시간, 사진 정리하면 다시 새벽 서너시에 잡니다.
 
  

3. 첫 직장 생활의 회한 -_-

  힘든건 좋습니다. 실제로 필드에 나가있을 땐 즐거웠거든요. 그런데 이랬던 제가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회사, 다른 하나는 사무실 근무자의 태만이었습니다.
 
 안산프로젝트의 경우 일단 1700여개의 항목을 촬영하라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에서 오더가 내려왔고 그것은 고스란히 제게 넘어왔습니다. 문제는 1700여 항목을 다~ 촬영할 수 없다는 것이죠. 촬영을 하려면 결국 어떤 것을 촬영해야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천 때의 짧은 열흘간의 알바 경험으로 보았을때, 항목에는 촬영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더라는거죠. 일주일 정도 낑낑대면서 자료를 살펴보고서 민화, 설화, 전설, 개념, 기획항목 등을 제거하니 1000여 항목이 남습니다. 거기에 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촬영이 불가능하다든지, 과거 사진 등을 요구하는 항목처럼 시청이나 문화원에 공문을 통해 요청해야 할 것들이 400여건... 결과적으로 순 촬영이 가능한 항목은 800~900여 건이었습니다. 저는 사업이 시작되고 세달 쯤 후에 자료조사를 완료했기 때문에 실제로 촬영할 수 있는 양은 800여건이라는 것을, 진행상황으로 보았을때 9월 말에서 10월 중순쯤 완료될 것 같다는 것을 상급자에게 보고했습니다. 제 위에 PM이니 이사니 차장이니 직함만 들고 있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이 시점이 8월 초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두명의 상급자 - 한명은 컨텐츠 제작총괄이라는 '이사'직함을 가진 분이었고, 한명은 PM으로 있는 '차장'이었습니다 - 는 우리가 어떤 것을 얼마나 촬영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던 겁니다. 위치를 찾아주는 것, 지도 그리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적어도 어떤 것을 촬영해야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7월쯤에 1차로 요청한 '수집자료' 요청이 제대로 된 것도 아닙니다. PM 양반은 매일 내가 촬영은 잘하고 있나 사무실에서 졸다가 때되면 전화하던게 다였던 겁니다. 나중에는 '이사'와 '차장'이 프로젝트에 걸린 리스크를 서로에게 떠넘기느라 회사 분위기가 매우 안좋았습니다. 결국 10월에는 병을 핑계로 '이사'가 퇴사했다죠. 다음 타겟은 저였습니다. 안그래도 9월쯤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더니, 이사가 퇴사한 이후에는 제가 촬영을 늦게해서 프로젝트가 다 늦어진다로 설명되는 겁니다. 8월에 분명히 촬영 가능한 양을 보고했고, 언제쯤 끝날거다 승인받았는데, 사장은 전혀모르더라구요. 저보고 왜 800건밖에 못찍어놓고 더 찍을게 없냐고 다그치면, 전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수집해야 할 자료가 최소 400여건인데, 그냥 시청 공보과나 문화원 담당자한테 전화 한통, 공문 한쪽만 보내면 해결 될 것을... 제가 있는 동안은 하지 않더랍니다. 다른 업체는 두명이서 넉 달이면 할 일을 좁아터진 이 회사는 세명이서 다섯달이 지나도록 반도 못끝냈더라죠. 불명예 퇴사한 '이사'는 그렇다치고, '차장'은 교묘히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저를 도와주는 것 처럼 필드에 나왔더랍니다. 조사도 제대로 안했는지 길을 모르면 전화해서 길이나 물어보고 앉았고... 나중에 정말 황당했던 것은, 한중연 측에서 몇몇 동네에 대한 항목 위치를 회사측에 넘겼다는 겁니다. 이 자료를 제 손에 쥐어줬으면 세달간 밤낮없이 피곤해하며 삽질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이죠.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제가 얘기했던 800건 정도가 채워지면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프로젝트가 늦어진 책임을 묻는, 퇴출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마지막엔 인사 한 번 제대로 안하고 퇴사를 하게 됩니다. 입사할 때 애사심을 갖고 일해달라던 사장... 참 기분 뭣 같았습니다. 후에 저를 정말 위한 건지 어떤 건지... 아무튼 다른 프로젝트를 맡았던 다른 이사님이 도와달라고 해서 1달 가까이 안산에 같이 나가서 추가 촬영을 하긴 했었습니다. 길잡이로요.
 
  

4. 아쉬움, 그리고 이런 회사는 가지말자

 처음 연봉(?)협상을 할 때가 생각납니다. 다른 분에 비해서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입사를 했더라죠. 알바 때보다 훨씬 열악한 급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장한다던 4대보험 하나 안들어놔서 저는 지금도 법적으로는 직장을 다닌 적 없는 것이 되어있습니다. 돈이란게 무서운 것 같습니다. 외근의 폐혜랄까... 그런 것도 있구요. ^^; (쟤가 일을 못해서 진행이 안돼... 이런 식이 되기 딱 좋은 환경이었죠)

 제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자금이 돌지 않아서 급여가 두세달 밀린 적이 많았습니다. 한여름에 뙤양볕 아래에서 물한모금, 밥한번 못먹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죠. 최종 퇴사한 후에도 일했던 급여가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마지막에 도와달라고 해서 한 달 이상 안산에 출근하는 과정에서도 약속했던 금액을 다 받지 못했었습니다. 노동부에 신고할까...하다가도 제 코묻은 돈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은 사장이 불쌍해서 한참 양보하고 연을 끊었다죠. 다만 사원이 열 명도 안되는 회사인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회사는 절대로 가지 말자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름 천만원 조금 넘게 벌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만... 남는 것은 약간의 빚과 카메라와 렌즈네요;;; -_-;
 
 


5. 향토문화전자대전에 관해...

 제 블로그에는 몇몇 묘지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원래는 추가로 더 써야했는데 백업했던 자료를 열받아서 다 지워버려서;;; -_-; 아무튼, (저 나름의) 프로필을 장식할 수 있는 나름의 거대프로젝트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관료주의에 찌든 트래픽 낭비'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가장 문제삼고 싶은 부분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에서 구글어스와 같은 식으로 위치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중연측에서 요구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촬영 당시의 GPS값을 제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적용을 안하죠. GPS값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이상 일반인에게는 복잡한 숫자 이상 되지 않습니다. -_- 구글의 경우는 파노라미오(http://www.panoramio.com/)나 플리커(http://www.flickr.com/)등과 연동해서 지도 위에 사용자가 사진을 입력할 수 있게 합니다. 서두에 언급한 360˚ 파노라마도 VR(버추얼리얼리티)라고 하는 이름으로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공급됩니다. 그런데 활용도가 한참 차이가 나죠.
 영리업체인 다음이나 네이버의 경우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죠(제가 올린 몇몇 페이지는 다음지도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지도 위에 장소가 표시되고, 사진이 올라오게 하는 서비스, 그것이 한참 구린(ㅜㅜ) 문화대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포털에도 공급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정보와 자료의 양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할 수 밖에 없거든요. 만약 다음이나 네이버 지도에 향토문화전자대전의 컨텐츠를 볼 수 있다면, 안산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정보를 받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영체제가 DOS같은 UI에서 Window같은 GUI로 넘어온 데에는 편의성을 마케팅해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iOS와 안드로이드의 싸움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죠. 하지만 향토문화전자대전은 여전히 텍스트 중심의 그것입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웹을 1, 2억 투자해서 낭비하고 있는거죠. 그것도 '세금'으로 말입니다. 그래놓고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고 자축하고 있을 겁니다. 두 번 일을 해보고, 가끔 촬영했을 때를 기억하면서 사진을 넘겨보면 한숨이 납니다;;;

 아무튼... 돈없는 놈이 돈돈 거리기는 하지만. 씁쓸한 것은 여전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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